나를 구성하는 정체성들을 가만히 나열해 본다. 나는 그래도 잘사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서울 강남 출생이다. 나는 이동에 아무런 물리적 제약 없는 비장애인이고, 존재와 사랑을 증명할 필요없는 이성애자 남성이다. 뭘로 보나 나는 이 사회의 강자다.
강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약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그들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이해는 한다만 너무 심하지 않냐는 되도 않는 논리로 집회를 악마화했다. 혐오를 동력으로 삼는 정치인들을 옹호했고, 참사를 두고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며 슬퍼할 기회마저 빼앗아가려 했다. 여러 일들을 겪으며 혐오를 벗어던지게 됐음은 다행이지만, 그리 간단히 해결되지 않을 잘못들에게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처음엔 단지 비상계엄이 잘못된 것이라는 이성적 판단으로 집회에 나갔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회복을 외칠 뿐 그 너머의 세상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얼떨결에 나갔던 남태령의 밤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짓밟히고 숨죽이던 이야기들이 고개를 뜨겁게 메우는 모습을 보았다. 성소수자의 사랑할 권리,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 여성의 안전할 권리, 노동자의 일할 권리라는, 사회가 규정한 '정상인'이라면 굳이 나서서 외칠 이유가 하등 없는 말들을 들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했다. 백성이 주인되는, 모두가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 투표만으로는 결코 이루지 못할 일이며 여전히 소수자들에게 이 나라는 충분히 민주적인 삶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대통령 윤석열'만 극복하면 됐지만, 그들의 삶에는 훨씬 많은 윤석열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통, 권위주의, 차별, 혐오라는 단어들로 요약되는 그 존재들이 산적한 삶이 있음을 알았다.
그 생각으로 폭넓은 연대에 나서기 시작했다. 경찰에게 끌려나가면서도 혜화역 승강장에 섰고, 남성으로서 동덕여대생들을 옹호하는 집회에 나섰다. 추운 겨울 밤을 하청노동자들의 농성장에서 함께 지새웠다. 더욱 폭넓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깨달은 시점에서, 이제 나는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차별, 혐오, 독선, 오만. 윤석열 정권을 정의하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윤석열의 것뿐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 깔린 것들이며 나 역시 벗어나지 못한 것들이다. 나는 사람으로서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도 결코 윤석열에 지고 싶지 않다. 나는 대통령 윤석열, 우리 사회의 작은 윤석열들, 그리고 내 안의 윤석열에게 맞서 싸운다는 마음으로 연대한다. 모든 사람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세상이 온다면, 우리는 그때 비로소 윤석열의 완전한 탄핵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
오브라 딘 | 구르는시민연대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기후정의동맹 등 사회운동 연대체와 그에 소속된 다양한 단체 및 개인, 노동당·녹색당·정의당 등 진보정당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노동해방을 위한 좌파활동가 전국결집, 새로운노동자정치 추진모임, 평등의길 등 노동운동단체들이 함께 하는 네트워크입니다. 『평등으로』는 ‘네트워크’가 만들고 전국 각지에 배포하는 주간 신문입니다.
후원계좌 : 기업 048-159061-04-013 체제전환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