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8일 서울 경복궁 앞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 촉구 10차 범시민대행진 집회’에 일본인 활동가 히시야마 나오코가 무대에 올랐다. 히시야마 씨는 “2월 8일은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도쿄에서 있었던 독립선언으로부터 106년이 되는 날”이라며,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한국에서 전개된 윤석열 퇴진 투쟁에 존경과 연대를 표했다. 그는 “여러분의 투쟁은 군사 정부의 부활을 저지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냈”으며,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민주주의 파괴와 후퇴에 강력한 일격을 가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전쟁도, 독재도, 핵무기도 없는 세계, 민주주의와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시대가 요구하는 목소리”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히시야마 활동가의 상식적인 발언을 들은 광장의 많은 시민들이 따뜻한 환영과 연대의 박수를 보냈다. 그의 말처럼 광장에 나선 시민들이 맞서 싸우는 것은 단지 윤석열만이 아니다. 지난 수년 사이 세계 각국은 양상만 조금씩 달리할 뿐, 급격한 사회적 퇴행의 파고를 겪어왔다. 유럽에선 극우 정당들이 대중 지지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고, 미국에선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해 그간의 자유주의적 질서를 무너뜨리고 팔레스타인과 그린란드, 우크라이나, 파나마운하 등에 제국주의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인식 후퇴 역시 이런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극우 따라하는 한국 극우
지난 1월 윤석열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시도 과정에서 부정선거론에 동조하거나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이 급증했다(10%대 → 30%대). 이는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건을 낳았고, 이후로도 폭력과 혐오 선동이 난무하고 있다. 이들은 윤석열 퇴진과 민주주의, 평등을 향한 목소리를 죄다 ‘빨갱이’나 ‘친중’으로 규정하고, 가짜뉴스를 통한 조선족 혐오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의 행동을 ‘극우’로 규정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지난 10년 사이 새롭게 등장한 극우세력은 과거의 극우와 유사성을 보이면서도 현대적인 특성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인종과 민족, 문화적 차이에 따른 불평등을 당연시하고, 권위주의를 지향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주민들을 [사실과 다르게] 범죄와 실업의 원흉으로 간주하고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배제, 심지어 습격조차 지지한다. 총을 동원한 입법부 공격마저 ‘엘리트에 맞선 저항’이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며, 소수자들의 배척과 혐오를 강조한다. 한국의 극우 역시 이런 모델을 정확하게 모방하고 있다. 이들의 ‘STOP THE STEAL’, ‘MAKE KOREA GREAT AGAIN’ 구호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구호를 그대로 베낀 것이다.
한데 퇴진 광장에 있었던 시민들 중 아주 일부는 단지 ‘일본인이 발언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비상행동을 비난하고, 일본인의 배척과 주최측의 사과를 주장했다. 일제 강점기의 식민주의 경험이 우리 역사에 남긴 뼈아픈 상흔을 기억하고 일본 지배계급의 사죄를 받아야 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일본 사회에서 부당하고 우경화하는 권력에 맞서 싸우는 활동가의 목소리마저 청할 수 없다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100년 전 전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이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고통받을 때조차 식민지-피식민지 저항세력 간 연대는 중요한 과제였으며, 심지어 독립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일 때도 있었다. 발언자가 언급했듯, 조선인 청년들의 2.8독립선언 당시 여러 일본인 활동가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이 운동에 가담했던 청년들의 안전은 크게 위협받았을 것이다. 오늘날 일본 극우의 혐한 스피치에 가장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는 것은 이런 일본인 활동가들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국경은 없다
민주주의에 국경은 없다. 1999년 시애틀 반신자유주의 저항이, 2009년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민주주의 투쟁이 전 세계 곳곳으로 확산됐듯, 각국에서 이뤄지는 민주주의 퇴행과 불평등에 맞선 운동은 국적과 민족, 인종을 넘나들어야 한다.
윤석열 탄핵이 인용되고 정권이 교체돼도 극우세력은 수그러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향후 안보 환경이 나빠지거나 경기 침체의 늪이 깊어질 때마다 이들은 더 큰 세력화를 도모하며 우리 사회를 위협할 것이다. 따라서 극우화에 맞설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을 도태시키는 것이지, 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외부자’를 혐오하는 것에 있지 않다. ‘혐오’와 ‘배제’는 극우세력이 고조되는 자양분이며, 이에 맞서 이길 수 있는 길은 두터운 사회운동과 연대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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